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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독 1장 요약

철학하이데거존재와시간

2026년 8월 31일

박찬국 교수님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강독>을 다시 시작했다. 적지만 조금씩 진도를 나가보려고 한다. 오늘은 1장을 읽었는데, 내용을 까먹지 않게 다시 리마인드하고, 이후 LLM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를 만들 겸 해서 1장에 대한 요약을 다음과 같이 작성해본다.

오늘 읽은 것

배경

모든 철학에는 배경이 필요하다. 왜 기존 철학 체계가 부족한지, 그리고 어떻게 나의 철학 체계는 그 부족함을 메꿀 수 있는지.

하이데거의 경우 그 배경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한 존재론의 그리스적 단초와 그 이후의 존재론적 망각의 역사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투박하긴 하지만 진정으로 존재라는 현상 그 자체로부터 존재에 대한 탐구를 시도했다는 큰 성과를 냈다. 그러나 이후 이 둘이 세운 철학적 기반을 따라간 후대 철학자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성과를 너무 당연하다고 여긴 나머지, 이들의 성과에만 집중하고 그 과정과 현상적 기반은 도외시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로 인해 그리스 철학 이후의 존재론에서는 원래의 현상적 근원과 존재물음이 은폐되는데, 하이데거는 이 부분을 비판하면서 존재론은 다시 현상 그 자체로부터 탐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다른 학문 대비 존재론의 우위

하이데거는 다른 학문(역사학, 과학 등)에 비해 존재론이 상대적으로 우위를 갖는다고 평가한다. 이는 곧 각 학문 분야는 자기 사태영역의 존재자들이 어떤 종류의 존재자인지를 이미 어느 정도 전제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역사학은 ‘역사적인 존재자란 무엇인가’, 생물학은 ‘생명체란 어떤 존재자인가’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를 이미 깔고 연구를 진행한다. 그래서 그 학문의 기본 개념을 근본적으로 명료화하려면 해당 영역의 존재론이 선행해야 하는 것이다.

매우 거칠게 말하면 이런 식이다: 역사학의 사태영역 - 쉽게 말하면 특정 학문의 관심사 - 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 일련의 사건 집합이 역사적 맥락 안에서 가지는 의미 등이다. 그리고 역사학의 이러한 사태영역을 따짐에 있어 시간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역사 자체가 시간선을 따라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아직은 잘 모르지만 이후에 살펴볼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이러한 시간에 묶인 역사성을 지닌다는데 이런 역사성은 어디서 비롯하는 것일까?

이런 식으로 파고 내려가면 역사 → 역사성 → 시간 → 현존재라는 흐름에 이르게 된다. 결국 모든 학문은 이런 식으로 끝에 가서는 존재라는 개념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하이데거는 모든 학문은 존재론에 기반하기에 존재론이 그 모든 학문에 비해 위에 있다고 평가한 것이다.

현존재의 존재론적 특권

세상에는 다양한 존재자가 있고 인간(이하 현존재로 통일)도 그 중 하나이다. 다만 현존재는 다른 존재자 - 돼지 등 동물이나 나무 등 식물 - 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는 곧, 현존재는 존재에 대한 배경 지식을 존재이해로서 선행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현존재는 일상적으로 어떤 존재자를 마주할 때 그것이 단순히 눈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 무엇으로 이해하면서 관계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망치를 일상적인 작업 속에서 단순히 철 덩이와 거기에 붙어 있는 나무 막대기 따위로 먼저 이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못을 박는 작업 속에서 그것을 **‘못을 합판에 박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자연스럽게 이해하며 사용한다. 즉, 현존재에게 망치는 우선 물리적 성질을 가진 하나의 사물로서가 아니라, 다른 도구와 작업(이 케이스에서는 못과 합판)들이 얽힌 맥락 속에서 사용되는 도구로서 드러난다. 이런 사례는 현존재가 존재자와 관계할 때 이미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현존재는 다른 존재자들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고찰하곤 하며,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스스로 문제 삼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처럼 현존재는 존재가 무엇인지 명료한 개념으로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일상적인 삶 속에서 이미 존재를 암묵적이고 모호하게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이해가 현존재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지고 있는 선행적이고 전(pre)존재론적인 존재이해라는 것이 하이데거의 주장이다.

이러한 선행적 존재이해 덕분에, 현존재는 자신과 다른 존재자들의 존재를 문제 삼고, 더 나아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물음 - 즉, 존재물음 - 을 명시적으로 던질 수 있는 존재자로 설 수 있다. 이는 다른 존재자와 현존재를 구별하는 결정적인 특징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하이데거는 존재의 의미를 밝히기 위한 근본적인 존재론의 출발점을 현존재에 대한 분석에서 찾는다.

존재의 진리를 밝히는 방법

그럼 존재의 진리를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밝힐 것인가? 이는 현존재가 가지고 있던 선행적이지만 모호한 존재이해를 다듬고 더 명료하게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가능하다.

이는 곧, 현존재가 가진 존재이해로 더 본질적인 존재의 진리를 밝혀내는 과정인 것이다. 여기서 이런 물음이 들 수 있다: "밝혀야 할 것은 존재의 진리고 그걸 밝히는 자는 현존재인데, 현존재가 가진 불완전한 존재이해로 존재의 진리를 밝히는 건 논리적으로 순환 논증 아닌가요?" 즉, 밝히려는 결론이 전제되어 있는 건강하지 못한 논증이라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에 대해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라고 대답한다. 정확히는, 현존재에게는 존재의 진리가 이미 전제되어 있는 게 맞다는 것이다. 다만, 전제에서 말하는 존재이해는 존재의 진리의 본질에 가깝기보다는 모호하고 평균적인 것이기 때문에 계속 검토하며 다듬어가야 한다. 그렇기에 이 부분은 논리학적 접근이 아닌 해석학적 접근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해석학적 접근이라는 표현이 이해하기 좀 어려웠다. 학부에서 해석학 관련 강의를 들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하이데거의 이해를 위해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하이데거의 해석학은 선이해 → 해석 → 선이해 수정 → 해석 → 선이해 수정 → 반복...의 과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보통 공부를 할 때 특정 학문에 대한 선이해를 가지고 시작한다. 컴퓨터공학을 예로 들면 "코드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라는 매우 러프한 이해로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 매우 러프한 선이해는 점차 아래처럼 확장된다:

  • "코드는 프로그램의 자료구조를 구현할 때 필요하다"
  • "자료구조는 프로그램의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기 위해 필요하다"
  • "자료구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캐시 히트를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가장 미진한 선이해를 바탕으로 서툴게 해석하고, 그 서툰 해석으로 알게 된 것을 우리 선이해에 반영하며, 다음에는 조금 더 확장된 선이해를 바탕으로 더 깊은 해석을 할 수 있게 된다. 존재론에서의 해석학 역시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는 존재이해를 선행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그 깊이는 깊지 않다. 하지만 이 미흡한 존재이해를 바탕으로 해석과 선이해의 확장을 반복하게 되면 결국 존재론의 끝 - 끝이 있기는 한가 모르겠지만 - 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질문한 것

1. ‘그리스적 단초’의 의미

질문

  • ‘그리스적 단초’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포함되는가?
  • ‘그리스적 단초’란 무엇인가?

요약

  • 포함된다. 오히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핵심에 속한다.
  • ‘그리스적 단초’는 고대 그리스 철학이 존재를 철학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마련한 최초의 문제설정과 개념적 출발점을 뜻한다.
  • 하이데거의 비판은 그리스 철학 자체를 단순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 문제는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살아 있던 존재물음이 후대 전통에서 교설화·평준화되어, 존재는 이미 충분히 이해된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굳어졌다는 데 있다.

핵심: 그리스 철학의 최초 성취 → 후대의 교조화 → 존재물음의 망각

출처: Heidegger, Sein und Zeit, §1.


2. ‘사상하다’의 의미

질문

  • “존재라는 개념은 ... 존재자들의 차이를 사상함으로써 획득되는 것은 아니다”에서 ‘사상하다’는 map의 뜻인가?

요약

  • 아니다.
  • 여기서 사상은 捨象이며, ‘차이를 버리다’, ‘도외시하다’, ‘추상하다’라는 뜻이다.
  • 컴퓨터공학의 mapping에 해당하는 寫像과는 동음이의어일 뿐이다.
  • 일반적인 유개념은 개별자들의 차이를 사상하고 공통점을 추상해 만들 수 있지만,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는 그런 최고 유개념이 아니다.

핵심: 捨象 = 차이를 버리고 공통성을 추상함 / 寫像 = mapping

출처: Heidegger, Sein und Zeit, §1.


3. ‘유비의 통일’의 의미

질문

  • ‘유비의 통일(Einheit der Analogie)’이란 무엇인가?
  •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으로 존재의 보편성을 설명하려 했는가?

요약

  •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존재는 하나의 동일한 유처럼 모든 존재자에게 동일한 의미로 적용되지 않는다.
  • 그렇다고 ‘배(船/腹/梨)’처럼 완전히 무관한 동음이의어도 아니다.
  • 실체·질·양·관계 등 여러 범주의 존재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중심적 존재 의미, 특히 실체와의 관계를 통해 통일된다.
  • 이를 ‘하나를 향하여(pros hen)’ 말해지는 구조라고 한다.
  • 따라서 존재의 통일은 유적 동일성이 아니라 관계적·유비적 통일성으로 파악된다.

핵심: 존재는 일의적이지도, 완전한 다의어도 아니며, 하나의 중심과의 관계를 통해 통일된다.

출처: Aristotle, Metaphysics Γ.2, 1003a33–b10;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Aristotle’s Metaphysics”.


4. 철학적 ‘유비’와 비유법의 ‘유비’

질문

  • ‘유비’는 비유법에서 말하는 그 유비인가?

요약

  • 같은 어원과 기본 발상을 가진다.
  • 한국어 ‘유비(類比)’, 영어 analogy, 독일어 Analogie, 그리스어 analogia는 같은 계열이다.
  • 다만 철학에서는 단순한 수사적 비유가 아니라, 서로 완전히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것들이 일정한 관계구조를 공유한다는 의미로 더 엄밀하게 사용된다.

핵심: 어원은 같지만 철학에서는 관계적 동일성을 설명하는 전문용어다.

출처: Aristotle, Metaphysics Γ.2; SEP, “Aristotle’s Metaphysics”.


5. ‘계기’와 ‘구조계기’

질문

  • ‘계기’란 무엇인가?
  • ‘구조계기’란 무엇인가?
  • 왜 ‘구조’가 붙으면 의미가 달라지는가?

요약

  • 철학에서 **계기(Moment)**는 어떤 전체를 성립시키는 한 측면·국면·구성적 요소를 뜻한다.
  • 단순한 물리적 부품처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부분’과는 다르다.
  • **구조계기(Strukturmoment)**는 어떤 현상이나 존재방식의 구조 자체를 구성하는 본질적 측면이다.
  • ‘구조’가 붙으면서 계기의 범위가 ‘그 구조를 성립시키는 계기’로 한정된다.
  • 하이데거에게 구조계기들은 서로 분리된 부품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 전체 안에서 상호의존적으로 함께 성립하는 측면들이다.

핵심: 계기 = 전체의 본질적 측면 / 구조계기 = 구조 자체를 이루는 본질적 측면

출처: Heidegger, Sein und Zeit, 특히 §41 전후의 Sorge 분석.


6. ‘조회하다’의 의미

질문

  • “존재자에 조회해서 그것의 존재가 물음의 대상이 된다”에서 ‘조회하다’는 무슨 뜻인가?
  • 독일어와 영어 대응어는 무엇인가?

요약

  • 여기서 ‘조회하다’는 데이터베이스 조회가 아니라 어떤 대상에게 물음을 던져 그것으로부터 답을 얻으려 하다라는 뜻이다.
  • 독일어 핵심어는 befragen.
  • 영어 Macquarrie & Robinson 번역에서는 주로 interrogate로 옮긴다.
  • 하이데거는 물음의 구조를 구분한다.
개념독일어의미
물음의 대상Gefragtes무엇에 관해 묻는가
조회되는 것Befragtes무엇에게 물어보는가
물어 얻으려는 것Erfragtes질문을 통해 최종적으로 밝히려는 것

존재물음에서는 대략:

  • Gefragtes = 존재
  • Befragtes = 존재자
  • Erfragtes = 존재의 의미

핵심: 존재 자체를 직접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에게 그 존재를 ‘물어’ 존재의 의미를 밝힌다.

출처: Heidegger, Sein und Zeit, §2.


7. 해석학과 해석학적 순환

질문

  •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 해석학적 순환이란 무엇인가?
  • 현존재의 흐릿한 존재이해에서 출발하는 것이 왜 순환처럼 보이는가?

요약

해석학
  • 전통적으로는 텍스트, 법률, 성서 등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가를 다루는 이론이었다.
  • 하이데거는 이를 더 근본적으로 확장하여, 현존재 자체가 이미 세계와 자기 자신을 이해하면서 존재한다고 본다.
  • 따라서 이해는 단순한 지적 활동이 아니라 현존재의 존재방식이다.
해석학적 순환
  • 어떤 것을 해석할 때 우리는 항상 이미 일정한 **선이해(Vorverständnis)**를 가지고 출발한다.
  • 해석은 그 선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해석 결과에 의해 선이해가 다시 수정된다.
선이해
→ 해석
→ 선이해의 수정
→ 더 나은 해석
→ ...
존재물음과의 관계
  • 현존재는 존재를 명료하게 정의하지는 못하지만 이미 흐릿한 전존재론적 존재이해를 가지고 있다.
  • 이 이해를 출발점으로 현존재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점차 명료화한다.
  • 따라서 이것은 결론을 미리 전제하는 논리적 순환이 아니라, 이해 자체가 작동하는 해석학적 순환이다.

핵심: 우리는 완전히 무지한 상태에서 탐구를 시작하지 않는다. 선이해를 가지고 시작하고, 그것을 사태 자체에 비추어 수정한다.

출처: Heidegger, Sein und Zeit, §2, §32;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ermeneutics”, “Martin Heidegger”.


8. “해석학적 순환이 문제이다”에서 ‘문제’의 의미

질문

  • ‘문제’를 ‘잘못되어 교정해야 할 것’이라는 뜻으로 읽는다면 오역인가?

요약

  • 하이데거는 해석학적 순환 자체를 오류로 보지 않는다.
  • 오히려 이해에는 해석학적 순환이 불가피하며, 중요한 것은 순환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 따라서 ‘문제’를
    • ‘논의의 쟁점’
    • ‘다루어야 할 문제상황’ 정도로 읽으면 적절하다.
  • 반대로 ‘교정해야 할 결함’으로 읽으면 하이데거의 입장과 어긋난다.
  • 다만 실제 번역의 옳고 그름을 확정하려면 대응 원문을 확인해야 하므로, 오역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오독 가능성이 큰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안전하다.

핵심: 순환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조건이다. 문제는 순환 자체가 아니라 선이해를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출처: Heidegger, Sein und Zeit, §32.


9. ‘사태영역(Sachgebiet)’의 의미

질문

  • ‘사태영역’은 무엇인가?
  • 컴퓨터공학의 사태영역이라고 하면 무엇을 말하는가?

요약

  • **사태영역(Sachgebiet)**은 어떤 학문이 탐구 대상으로 삼는 존재자들의 일정한 대상 영역이다.
  • 단순히 행정적인 ‘학문 분야’라는 뜻보다, 어떤 종류의 존재자를 어떤 방식으로 연구 대상으로 구획했는가를 강조한다.
  • 하이데거는 역사, 자연, 공간, 생명, 현존재, 언어 등을 예로 든다.

컴퓨터공학의 경우 예를 들면:

  • 계산
  • 알고리즘
  • 데이터와 정보표현
  • 프로그램
  • 컴퓨터 시스템
  • 네트워크
  •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등이 넓은 의미의 사태영역을 구성할 수 있다.

세부 분야에서는:

  • 자료구조론 → 배열, 트리, 그래프, 해시 구조와 그 연산
  • 운영체제론 → 프로세스, 메모리, 파일, 스케줄링, 자원관리

등으로 더 세분할 수 있다.

핵심: 사태영역 ≈ 특정 학문이 대상으로 삼도록 구획된 존재자들의 domain

출처: Heidegger, Sein und Zeit, §3.


1장 핵심 흐름 압축

1장의 논의를 크게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고대 그리스 철학은 존재를 본격적으로 탐구했다.
↓
그러나 그 성과가 전통 속에서 교설화되며
‘존재는 이미 자명하다’는 선입견이 생겼다.
↓
존재는 최고 유개념도 아니고,
단순히 정의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포기할 수도 없다.
↓
따라서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물어야 한다.
↓
존재물음은 존재자를 조회하여 수행되며,
그중 존재를 이미 이해하는 현존재가 특별한 출발점이 된다.
↓
현존재의 흐릿한 존재이해에서 출발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이다.
↓
이 존재물음은 각 학문이 다루는 사태영역보다
더 근본적인 존재론적 토대를 묻는 작업이다.

복습용 한 줄 정리

『존재와 시간』 1장의 핵심은 ‘존재는 이미 안다고 생각되어 망각된 물음이며, 현존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흐릿한 존재이해를 출발점으로 그 의미를 다시 명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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